2009년 05월 11일
아버지와 야구
박동희 기자의 [베이스볼 포엠]아버지의 플레이볼
요새 LG가 잘나간다. 사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와 있는지라 그저 경기결과만 문자로 확인하곤 한다. '애증의 테이블 세터'인 일용택과 이대형은 강력한 테이블 세터진을 형성, 페타지니는 그저 찬양할 뿐이며, 'FA듀오' 정성훈과 이진영의 활약도 쏠쏠하다.
물리적으로 야구장도 못가고 더럽게 느린 인터넷 때문에 동영상중계도 볼 수 없는 형편이지만 아직도 야구는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건 정확히 1995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였다. 어린이 신문에 났던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 모집'광고. 그게 바로 야구가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왠지 모르게 LG를 골랐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LG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원래 나랑 누나랑 같이 쌍방울 회원이 되고 싶어했었다.(이유는 모르겠다) 근데 어머니가 쌍방울같은 꼴찌팀 회원되서 뭐하냐며 말렸고(ㅋㅋㅋ) 결국 나는 LG 어린이회원을 시작으로 LG팬이 되었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 해 5번 가량 야구장을 찾았던 것 같다. 두어번은 가족이 같이 갔었고, 나머지는 아버지랑 나만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의 잠실야구장은 정말 열정으로 가득 찬 컵과 같았다. LG 트윈스의 깃발 아래 팬들은 유지현의 안타 하나에, 이상훈의 스트라이크 하나에 광분했었다.
여기서 다시 사족을 달자면,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 똑똑하게 남은 유일한 야구기억은 한대화의 병살장면이었다. 나란 놈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한대화의 별명은 '해결사'다'며 나한테 띄워준 데 반해서 실망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린 시절, 야구에 관한 모든 기억엔 아버지가 함께했다. 야구광도 아니었고 야구를 즐겨보지도 않던 아버지는 아들놈의 성화에 못이겨 수차례 야구장을 찾았고, 그런 아들이 기특했던지 아버지는 그런 아들과 함께 집 앞 공터에서 캐치볼과 야구를 하며 놀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싫었지만, 지금에 와서 아버지의 배려가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96년 이후에 기억이다. 다들 알다시피 96년에는 KBO의 역사를 다시 쓰는 팀이 창단했었다. 현대 유니콘스. 마침 현대해상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공짜 야구표를 꽤나 많이 받아오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게 공짜라서 그런건 아니었다.(나는 공짜를 좋아한다ㅋㅋ) 이유는 잠실에서 LG와 현대의 경기를 볼 때 나는 항상 3루에서 지켜봐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다른 팬들처럼 유지현의 도루에, 김재현의 홈런에, 이병규의 안타에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내 주위에서는 항상 박재홍의 홈런에, 김경기의 적시타에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버지의 배려였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야구를, 단지 아들을 위해서, 그것도 꼭 LG와의 경기 티켓을 받아오셨으니까. 그 덕에 나는 원정측인 3루에서나마 내가 좋아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세월은 흘렀고 나는 어느덧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막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야구에 관련된 어떤 일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오후 6시 반만 되면 나때문에 야구를 틀어주던 TV에서는 케이블에서 하는 쇼가 방영되기 시작했고, 나는 내 컴퓨터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야구를 시청한다.
작년에 갔던 세 번의 야구장 구경에서 한 번은 친구와, 나머지 두 번은 혼자 갔다. 어머니는 내가 야구 볼 때 옆에서 '양준혁, 송진우가 아직도 선수네'라며 놀라시고, 누나와 이모는 언제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나에게 야구를 보여줬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랄까, 오늘 박동희 기자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 한켠에서 아련함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다른 아들들과 다르지 않게 아버지와 꽤 거리감이 있다. 누나는 약속이 있고, 어머니도 일이 있어서 늦으시는 바람에, 아버지와 나만 단둘이 저녁식사를 할 때도 별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는다.
옛날에도 우리 아버지는 친근하지 않으셨고, 나에겐 언제나 무섭고 근엄한 아버지셨지만, 어느새 내가 자라 쓸데없이 겉멋만 들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무시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철없고 어린 애송이에 불과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 기사를 보고 내 과거를 회상하면서 많은 걸 느낀 것 같다.
여름에 학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테고,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는 잠실야구장을 다시 찾는 일일 것이다. 아마 응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시 집에 가면 아버지께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말씀이나 드려봐야겠다. 야구는 역시 부자가 즐겨야 제맛이 아니던가.
요새 LG가 잘나간다. 사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와 있는지라 그저 경기결과만 문자로 확인하곤 한다. '애증의 테이블 세터'인 일용택과 이대형은 강력한 테이블 세터진을 형성, 페타지니는 그저 찬양할 뿐이며, 'FA듀오' 정성훈과 이진영의 활약도 쏠쏠하다.
물리적으로 야구장도 못가고 더럽게 느린 인터넷 때문에 동영상중계도 볼 수 없는 형편이지만 아직도 야구는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건 정확히 1995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였다. 어린이 신문에 났던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 모집'광고. 그게 바로 야구가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왠지 모르게 LG를 골랐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LG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원래 나랑 누나랑 같이 쌍방울 회원이 되고 싶어했었다.(이유는 모르겠다) 근데 어머니가 쌍방울같은 꼴찌팀 회원되서 뭐하냐며 말렸고(ㅋㅋㅋ) 결국 나는 LG 어린이회원을 시작으로 LG팬이 되었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 해 5번 가량 야구장을 찾았던 것 같다. 두어번은 가족이 같이 갔었고, 나머지는 아버지랑 나만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의 잠실야구장은 정말 열정으로 가득 찬 컵과 같았다. LG 트윈스의 깃발 아래 팬들은 유지현의 안타 하나에, 이상훈의 스트라이크 하나에 광분했었다.
여기서 다시 사족을 달자면,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 똑똑하게 남은 유일한 야구기억은 한대화의 병살장면이었다. 나란 놈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한대화의 별명은 '해결사'다'며 나한테 띄워준 데 반해서 실망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린 시절, 야구에 관한 모든 기억엔 아버지가 함께했다. 야구광도 아니었고 야구를 즐겨보지도 않던 아버지는 아들놈의 성화에 못이겨 수차례 야구장을 찾았고, 그런 아들이 기특했던지 아버지는 그런 아들과 함께 집 앞 공터에서 캐치볼과 야구를 하며 놀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싫었지만, 지금에 와서 아버지의 배려가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96년 이후에 기억이다. 다들 알다시피 96년에는 KBO의 역사를 다시 쓰는 팀이 창단했었다. 현대 유니콘스. 마침 현대해상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공짜 야구표를 꽤나 많이 받아오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게 공짜라서 그런건 아니었다.(나는 공짜를 좋아한다ㅋㅋ) 이유는 잠실에서 LG와 현대의 경기를 볼 때 나는 항상 3루에서 지켜봐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다른 팬들처럼 유지현의 도루에, 김재현의 홈런에, 이병규의 안타에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내 주위에서는 항상 박재홍의 홈런에, 김경기의 적시타에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버지의 배려였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야구를, 단지 아들을 위해서, 그것도 꼭 LG와의 경기 티켓을 받아오셨으니까. 그 덕에 나는 원정측인 3루에서나마 내가 좋아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세월은 흘렀고 나는 어느덧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막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야구에 관련된 어떤 일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오후 6시 반만 되면 나때문에 야구를 틀어주던 TV에서는 케이블에서 하는 쇼가 방영되기 시작했고, 나는 내 컴퓨터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야구를 시청한다.
작년에 갔던 세 번의 야구장 구경에서 한 번은 친구와, 나머지 두 번은 혼자 갔다. 어머니는 내가 야구 볼 때 옆에서 '양준혁, 송진우가 아직도 선수네'라며 놀라시고, 누나와 이모는 언제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나에게 야구를 보여줬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랄까, 오늘 박동희 기자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 한켠에서 아련함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다른 아들들과 다르지 않게 아버지와 꽤 거리감이 있다. 누나는 약속이 있고, 어머니도 일이 있어서 늦으시는 바람에, 아버지와 나만 단둘이 저녁식사를 할 때도 별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는다.
옛날에도 우리 아버지는 친근하지 않으셨고, 나에겐 언제나 무섭고 근엄한 아버지셨지만, 어느새 내가 자라 쓸데없이 겉멋만 들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무시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철없고 어린 애송이에 불과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 기사를 보고 내 과거를 회상하면서 많은 걸 느낀 것 같다.
여름에 학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테고,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는 잠실야구장을 다시 찾는 일일 것이다. 아마 응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시 집에 가면 아버지께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말씀이나 드려봐야겠다. 야구는 역시 부자가 즐겨야 제맛이 아니던가.
# by | 2009/05/11 20:59 | 야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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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