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마스크'를 통해 코미디 영화의 본좌로 자리잡은 짐 캐리가, 최근 영화들을 살펴보면 그닥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은 않다. 나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던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같이 혹평을 받은 영화도 있었고, '이터널 선샤인'처럼 좋은 영화이나 전혀 웃음기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슬슬 짐 캐리식 개그코드가 유치해지면서 대세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평이 있었고, 이 영화 역시 그런 평가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짐 캐리가 얼굴을 비틀며 코믹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식상한 '짐 캐리'식 코미디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좀 아까운 면이 있다. 일단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 영화처럼 닥치고 모든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다면 모든 것이 당연히 망가지겠지만, 우리는(특히 나는) 애매한 것에 대해서 일단 부정하고 보는 습관이 있다.

 영화 초반부의 짐 캐리처럼, 별일 없음에도 바쁜 척 하며, 별로 내키지 않는 자리는 일부러 피하고 도망다니기 바쁘다. '놀러 갈래?' 라고 친구가 물으면, 일단 '생각해 보고'라는 답변이 먼저 나오며, 처음 해 보는 일을 할 때는 나서서 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입장이 되고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이야기지만, '시도해보기 전에는 할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일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비행기 운전 법을 배워볼래?'라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대답보다는, '까짓거 하지 뭐'라는 대답이 좀 더 자신을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웃겼던 장면은 신부파티 계획하러 간 짐 캐리가 한국어로 한국인과 대화하는 장면. 미드 '로스트'에 나오는 '페이퍼타월이여기있네'로 시작하는 신 만큼은 아니지만 왠지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 할 수 있다는게 좀 재미있었다. 아쉽게도 짐 캐리의 코믹 연기는 여전했지만 더 이상 빵빵 터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다른 곳에서 계속 웃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s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주이 디샤넬. 스쿠터 탄 여자를 보자마자 '트릴리언!'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참 예쁘게 나와서 좋았는데, '예스맨'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그리고 그 재미있는 노래들도. 잘 몰랐었는데 앨범도 냈었더군. 어쩐지 배우치고는 노래를 잘한다 싶더랬다.

by 이터리얼 | 2009/11/03 22:15 | 영화 | 트랙백 | 덧글(0)

한국시리즈 + 스토브리그

작년보다 한계단 올라갔다는 거에 만족해야만 했던 이번 시즌ㅠㅠ 올해 초에 호주로 교환학생 가서 8월에나 돌아왔으니, 내가 와서 야구를 보기 시작했을 때 쯤에는 이미 일정이 절반 이상 끝나 있었고, LG 트윈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막장의 모습을 보이며 4강이 멀어져가던 기간이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야구장도 별로 안가고, 그닥 관심도 없이 지냈는데, 한국시리즈는 좀 재밌게 봤다. 기아나 스크나 나랑은 별로 상관 없는 팀이었지만, 이번 시리즈는 SK를 응원하면서 봤다. 딱히 SK가 좋았던 건 아니고, 그냥 예전부터 짜증나던 기아팬들의 '사랑해요 LG' 드립에 생각해보니 이번시즌 기아상대로 2승밖에 못했더군. 나는 그냥 단순해서 LG 상대로 잘한 팀을 싫어한다(ㅋ)

한국시리즈에서 SK가 이겼으면 했지만, 사실 김광현, 전병두, 박경완 없이 기아를 이긴다는거 자체가 에러였음에도, 박정권을 필두로 (상대가 기아투수진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나가 잘 해낸 타선과, 채병용을 필두로 보여준 SK 마운드의 투혼은 멋졌고, 그 덕에 명승부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7차전에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역시나 포스트시즌 12경기동안 거의 꼬박 나온 이승호, 고효준, 정우람, 윤길현 등이 정상일 리가 없었지;;

어쨌든 기아의 드라마틱한 승리로 V10을 달성하며 이번 시즌은 마무리되었고, 시즌이 끝났으니 이제 하위팀(최근엔 LG인듯ㅠㅠ)의 전유물, 내년 예상 라인업 짜기의 시간이 돌아왔다ㅠ

역시나 이번 스토브리그의 최대어는 김태균, 이범호. LG 입장에서 정성훈이 있으니 (사온다면) 이범호보다는 김태균이고, 김태균을 사온다면 페타지니를 미련 없이 내보내고 2명의 용병투수를 사 올 수 있겠다(옥스프링은 돌아오지 못한는걸까?). 대략 김태균을 데려오고, 페타지니를 내보내고 용병투수 두명일 때의 라인업은,

1 박용택 LF
2 이대형 CF
3 이진영 RF
4 김태균 1B
5 최동수(박병호) DH
6 정성훈 3B
7 조인성(김정민) C
8 박경수(박종호) 2B
9 권용관 SS

봉중근-용병-용병-심수창-이범준(최원호, 한희)

정도가 되겠다. 불펜을 썼다간 눈물날 거 같아서 걍 패스. 내년엔 정재복, 정찬헌의 J-J라인이 다시 가동되기만을 바랄 뿐ㅠ 이렇게 되면 타선은 올해보다 나으면 나았지 나쁠 건 없고, 선발진도 용병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정도 괜찮고, 운이 좋거나 불펜에서 한 명이 미치면 3~4위는 해 볼 수 있는 라인업. 가능만 하다면야 이게 최선이겠지만, 삼성, 일본도 뛰어들 예정인 김태균 쟁탈전에서 이길 수 있느냐가 의문.

두 번째 가정은, 페타지니를 내보내고 이병규의 국내복귀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병규.... 늙었어도 그 타격능력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면, 매력적인 카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경우의 맹점은 4번타자감이 없다는 것이다. 타선의 경우

1 박용택 LF
2 이대형 CF
3 이병규 1B(RF)
4 최동수(박병호) DH
5 이진영 RF(1B)
6 정성훈 3B
7 조인성(김정민) C
8 박경수(박종호) 2B
9 권용관 SS

이정도가 될텐데, 동수옹은 나이가, 박병호는 경험과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4번타자감으로는 무게가 많이 떨어진다. 오죽하면 1~6번중에 4번이 구멍이 될까. 그렇다고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중 한 명을 4번 쓰자니 4번타자의 유형을 가진 선수들이 아니라서 가장 좋은 타선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타선의 무게감은 소폭 하락하겠지만, 투수력을 대폭 늘릴 가능성이 있으니 나쁘지는 않다.

결국 페타지니를 내보내려면 최소한 김태균or이병규 중에 하나는 와야 되는데, 이병규는 본인이 일본 잔류를 원하고, 김태균은 영입이 만만치 않으니, 사실 최선은 페타지니, 최동수, 박병호를 적절히 1루와 지타로 돌려가며 쓰고, 선발용병 하나에 선발진을 키워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있는 선발자원은

봉중근-용병-심수창-이범준-최원호or한희or이승우(부상으로 인한 물음표 : 박명환, 강철민)

정도이고, 불펜은

정재복-정찬헌-오상민-류택현-이재영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선발은 원투까지는 용병이 좋으면 괜찮지만 그 이후가 막장이고, 불펜은 그냥 전부 다 막장이다. 뭐 김태균 데려오고 로페즈급 용병 2명을 뽑아온다면야 불펜이 막장이어도 우승권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일단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고, 데려와도 불펜이 막장이면 봉크라이처럼 세명이 합창으로 울지도 모르니;;;;

어쨌든 줄여서, 내 생각에는 어차피 풀타임 못 뛰는 페타지니, 최동수를 전부 안고 가면서, 두 명이 은퇴할때까지 어떻게는 박병호를 키우고, 그 동안 FA로 투수가 나오면 사고, 트레이드를 통해 투수진을 보강해서 대략 3년쯤 후에 괜찮은 팀을 만드는 계획이 가장 편하고 괜찮을 것 같다. 쓸데 없이 돈전쟁하지도 않을 수 있고. 근데 이건 내 생각이고, LG구단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p.s 이병규가 솔직히 돌아오면 LG팬 입장에서 정말 좋지만, 어떤 면에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2006년에 팀이 꼴찌인 상황에서도 팀을 떠났으면, 성공해서 돌아와야지. 내년엔 허접한 계약으로라도 어디라도 가서 성공해서 네이버 '해외야구' 탭에서 이병규 기사가 추신수 기사보다 많이 나오길 바란다.

by 이터리얼 | 2009/10/28 16:32 | 야구 | 트랙백 | 덧글(0)

뉴질랜드에서의 3주 - ④ 운명의 산

로토루아에서 타우포까지는 한 시간 밖에 안 걸리고, 그 사이사이에 여러 화산 관련 관광이지가 있기에 관광지도 상당수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래서 굳이 타우포까지 거쳐 갈 필요가 없었는데, 거기서 이틀이나 묵는 일정을 잡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통가리로 국립공원.

반지의 제왕을 본 이후로 뉴질랜드에 오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눈 덮인 산을 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산을 등반해보고 싶었고,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하이킹으로 알려져있었다.(다 하는데 8시간이 걸린다) 이게 날씨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가기로 한 날에는 날씨예보가 좋아서 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찍은 눈 덮인 산. 북섬에서는 참 보기 힘들지만, 남섬에 가면 보기 싫어도 보이는 광경이다.


하이킹은 초반부엔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베이스캠프(라기엔 그냥 화장실만 있다)에서부터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침에는 흐리지만 차차 맑아져서 점심께엔 해를 볼 수 있을것'이라던 일기예보는 전혀 맞지 않았고, 올라갈 수록 거세지는 바람과 우박에 과장같지만 히말라야에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산 정상께의 광경. 사방이 눈세상이었다. 길이 아닌 곳은 왠만하면 무릎정도는 우습게 들어갔다.

결국 심하게 내린 눈보라, 우박에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뭐랄까, 엄청나게 기대를 하고 갔는데 결국 다 해내지도 못해서 약간은 실망했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3주중에 최고이자 최악의 날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재미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올라가기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저 산 어딘가에서 반지의 제왕의 대단원, 운명의 산을 촬영했다고 한다. Tongariro Expedition이란 버스를 이용해서 올랐었는데, 그룹을 이뤄서 걷다 보니 운명의 산 보다는 '반지 원정대'에서 눈보라가 치던 산을 넘던 모습이 오버랩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돌아가기 직전에 찍은 이정표. 쏟아지는 눈보라에 카메라도 거의 맛이 간 상태였다.


결국 절반정도밖에 못 갔기에 아쉬움도 많이 남았지만,  '운명의 산'을 오르기가 이렇게 쉬우면 허무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했다. 해밀턴 근처에 있는 와이토모 동굴과 더불어서 언젠가 뉴질랜드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와서 이 하이킹을 마무리해야지.

하나 참 재미있었던 것은, 나중에도 계속 그러했지만, 내가 어떤 중요한 것을 할 때마다 날씨는 안좋았고, 어이없게도 그것이 끝나면 날씨가 갑자기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이 때도 그러했는데, 가이드가 포기를 선언하고 돌아와서 버스에 다시 타자마자 어디선가 해가 나타났었다. 참;; 운도 없지..

어쨌든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끔찍했던 하루가 가고, 그 다음 행선지는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이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오클랜드에서의 실망감 때문인지 큰 기대는 안했지만, 여기는 달랐다. 왜냐하면 웰링턴은 '반지의 제왕'의 수도나 다름없으니까.

by 이터리얼 | 2009/08/09 23:51 | 여행 | 트랙백 | 덧글(0)

뉴질랜드에서의 3주 - ③ 화산, 그리고 악취

지난번에도 밝혔듯이 내가 로토루아에 이틀동안 머물러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마타마타, 그러니까 호비튼 촬영지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로토루아라는 장소가 화산, 온천, 그리고 진흙으로 유명한 장소라는 것은 도착한 후에 알게되었다. 게다가 와이토모(Waitomo) 지역에 있는 동굴이 참 재미있어 보였는데, 계획을 세울 당시엔 들어보지도 못했기에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뉴질랜드라는 지역 자체가 환태평양 조산대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양이라 지진과 화산이 많았었고, 실제로 내가 있을 당시에도 남섬의 남쪽 부분에서 강도 7.8(10이 최고이니 상당히 강한 것이었다)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그 흔적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로토루아의 온천과 끓는 진흙, 거대한 호수들(타우포(Taupo)가 가장 크다고 한다), 그리고 Buried village가 있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Wai-O-Tapu. 가는 길에 geyser(간헐천? 뭐라고 불러야 될지 잘 모르겠다)라는 걸 보게 되었는데, 나는 그게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했었는데, 사실 인공적인 것이라 좀 많이 실망했더랬다.

옆 사진은 물을 분출할 때의 모습인데, 대략 10m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임엔 분명했지만 어쨌거나 인공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물이 분출되기 전에 직원이 와서 어떤 화학물을 넣으면, 물의 분출이 시작된다.)

Geyser를 보고 본격적으로 Wai-O-Tapu에 들어가자, 왠지 퀴퀴한, 계란 썩는 냄새 같은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명 팜플렛을 읽어보니 황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데, 그럭저럭 참을 만은 하지만 그닥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냄새임에는 분명했다.

Wai-O-Tapu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물웅덩이들의 이름이었다. 악마의 동굴, 미술가의 팔레트, 샴페인 풀 등, 상당히 재미난 이름들이었다. 이름은 재미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름의 어원 등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ㅡㅡ;;

Wai-O-Tapu의 여러 웅덩이들은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 근원은 각각의 물이 포함하고 있는 미네랄들이다. 어떤 것은 어두운 흑색(보통 이런 것은 악마랑 관련있는 이름을 가졌다), 어떤 것은 밝은 색, 어떤 것은 녹색.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고, 가장 신비롭게 생긴 것은 단연코 샴페인 풀(Champagne pool)이었다. 크기고 상당히 컸고, 안개로 뒤덮여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황색의 아름다운 둘레를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샴페인 풀의 모습.


샴페인 풀을 지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녹색의 신비롭고 거대한 호수가 하나 있다. 게다가 주위 숲속에서는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주는 장소였다. 나는 거기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하나는 그 호수의 광경이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는 악취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호수.아마 날이 맑았으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이 날에는 Wai-O-Tapu를 방문해서 여러 웅덩이들과 끓는 진흙등을 볼 수 있었지만, 사실 그런 것 정도는 로토루아 마을 내에서 해결 할 수 있다. 로토루아 시가지(라기엔 너무 작다만)한쪽 끝에 위치한 공원이 바로 그것인데, 공원에서는 무엇보다니 연기가 엄청 났다. 내가 묵은 호스텔이 그 근처이긴 했지만, 아침마다 보이는 연기에 마치 불이라도 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공원에 있는 한 물웅덩이. 연기로 인해 반대편을 볼 수 없을 정도일 때도 많다.


안타깝지만 여기서도 엄청난 악취는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십수년전에 유행했던 '방귀탄'보다는 확실히 덜한 냄새였다. 약간의 악취만 제외하자면, 오클랜드에서 느꼈던 실망감의 3배 이상을 로토루아에서 얻었던 것 같다. 호비튼도 가보고, 키위도 보고, 아름다운 화산의 잔해들도 봤으니까.

로토루아를 떠나기 전 나를 맞이해 준 무지개. 이 당시만 하더라도 저게 뭔 뜻일지 몰랐었다!


하지만 저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더 많은 즐거움과 아름다운 광경을 찾았으니까. 다음 장소는 타우포(Taupo)다. 호수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나는 단지 통가리로(Tongariro)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 찾았을 뿐이었으니까. 다음 편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재밌었고 가장 힘들었던(그리고 끝내지도 못했던) 8시간짜리 하이킹이다.

by 이터리얼 | 2009/08/05 20:34 | 여행 | 트랙백 | 덧글(0)

인생이란?

 작년 Wall-E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온 픽사가 다시금 신작을 냈다. 제목은 '업(UP)'.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영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상당히 쓸쓸하다. 탐험가인 '찰스 먼츠(찰스 다윈을 패러디한걸까?)'를 우상으로 삼은 두 남녀 아이가 우연히 만나, 결혼까지 하게된다. 어린 시절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나자는 꿈은 접어둔 채로.

 그들은 여러 번 '파라다이스 폭포'로의 모험을 위한 결심을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고, 결국 아내인 '엘리'는 파라다이스 폭포라는 꿈을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되버리고 만다.

 여기서 참 재미난 설정이 나오는데, 남편인 '칼'이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날 때, 풍선으로 집을 '뽑아'서 날아간다는 점이다. 픽사의 이런 점이 참 마음에 드는게,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주제를 선정하면서도, 이런 동심을 언제나 잃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리를 옮겨 파라다이스 폭포로 바뀐다. 수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엘리의 탐험책과 탐험가 찰스 먼츠이다.

 어린 시절 수많은 꿈을 꾸며 언젠가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겠다던 엘리의 탐험책. 하지만 '앞으로 할 일' 이후의 책장은 비어있지 않고, 칼과의 행복했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왠지 그 페이지를 봤을 때의 칼의 느낌을 알 것만 같았다. 엘리의 삶의 의미가 파라다이스 폭포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칼은, 그 후로 '집'이나 '파라다이스 폭포'에 보였던 집착을 버리게 된다.

 또 하나의 상징은 탐험가. 완벽한 악역처럼 보이는 그는 사실 상당히 슬픈 인물이다. 확대해석이긴 하지만 과거에 핍박받고 좌절했던 천재 과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화론'을 주창하자 미쳤다고 핍박받았던 찰스 다윈, '지동설'을 주장하자 생명의 위협마저 느껴 결국 본인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리고 힘겨운 탐험 끝에 새로운 종을 발견했지만 믿지않는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사기꾼으로 몰렸던 찰스 먼츠. 어쩌면 그는 엘리처럼 자신의 꿈을 잠시 접는 법을 배워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줄 알았다면 명성을 위해 미쳐버리는 일도 없었을 테니.

 어쨌거나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칼과 러셀뿐 아니라, 엘리와 찰스 먼츠의 인생까지도. 그리고 그네들의 인생은 우리를 너무 닮고 있는 것 같아서(특히 엘리와 칼의 경우) 왠지 모르게 슬픔이 몰려오는 것 같다.

by 이터리얼 | 2009/08/04 22:06 |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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